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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위에뜬기분이었어/나무사이그녀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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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생성기_01. Alt. 왕은 왕궁 지하에 비밀스레 만들어진 방의 문 앞에 있었다. 문의 안쪽에서는 왕비가 비밀리에 출산 중이었다. 지하에는 몇 개의 등불이 타고 있었으나 어두컴컴했다. 이 곳은 선대에 감옥으로 쓰이던 왕궁의 지하 깊은 곳으로 지금은 쓰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왕은 문 앞을 서성이면서 등불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공간들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왕은 손수 비밀리에 데려온 세 명의 산파들만이 왕비의 출산을 돕도록 조치했다. 그는 벌써 오랜 시간 이 어두운 문 앞에서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떠한 빛도 들어오지 않는 왕궁의 지하감옥 복도에 가끔씩 비명으로 번지는 왕비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울려퍼진다. 왕은 어둠 속에 시간을 세듯이 흘려보내며 자신의 운명에 대해 생각한다. 다음날 새벽녘이 되어서야 아이의 울음소리와 산파..
플롯 생성기_01 도현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열심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본부장으로 승진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고 도현은 이를 놓치기 싫었다. 도현은 다른 몇 명의 차장들 역시 승진을 위해 프로젝트에 매진 중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김 차장의 회사 내 불륜을 익명으로 폭로하였고 박 차장의 횡령을 감사팀에 고발했다. 두 명의 차장은 경쟁에서 제외되었다. 며칠째 야근을 하던 어느 날 그는 아침에 잠시 눈을 붙이기 위해 자신의 차가 있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으니 간밤에 보았던 자료들에 정연하게 열을 맞춰있던 글자와 숫자들이 풀어헤쳐져 둥둥 유영하고 있었다. 차로 내려가 잠시 눈을 붙이는데 곧 잠이 깬다. 그를 깨운 것은 아이 울음소리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
일출 물길을 젓다 보면 새벽을 만나기도 한다. 깊은 산 속 어두운 길가에 홀로 선, 미처 꺼지는 걸 잊은 가로등의 전구다마같은 새앳노란 해가 수면에 피어오른 안개 위에 세상을 뻐얼겋게 물들이며 떠오르고 있다. 막 쏟아지는 노랗고 붉은 첫 빛으로 인해 어둠에 숨어있던 나무들의 가지 하나하나의 실루엣이 점점 또렷해지고 있다. 수면에는 아침 바람으로 잔잔한 물결이 살랑대고, 아침 해가 물결무늬를 따라 촛불의 불꽃을 뒤집어 놓은 듯 길쭉하고 일그러진 채 반사되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아마도 어제와 엇비슷하겠지만 막 시작되는 아침을 목격하는 것은 언제나 확실하게 나를 기분 좋게 하는 몇 안 되는 일 가운데 하나다.
글라움베어 아이슬란드 북부에는 글라움베어라는 가옥형태가 있다. 모양은 단순하다. 사각의 벽과 일반적인 맞배지붕. 그림으로 그리면 기본적으로 그리게 되는 기본적인 집의 형태. 주로 농촌지역에 분포하고 있고, 현재는 거주용보다는 박물관이나 전통가옥 체험 등 관광객들을 상대로 아이슬란드 전통 농촌 생활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바람이 많은 지역이라 추위와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낮은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점과, 지붕에는 보온을 위해 흙과 잔디를 올렸다는 점이다. 잔디로 된 지붕을 이고 있는 집이 넓은 들판에 홀로 있는 광경은 고적하면서도 아름답다. 나는 솔헤이마산두르 해변에서 본 비행기 잔해를 생각하면서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의 특징 하나를 어렴풋이 느낀다. 한 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하늘뿐인 공간에 덩그..
바다 아이는 물고기가 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아이는 푸른 바다를 너무 좋아했거든요. 아이는 바다는 물론이고 바다와 관련된 그 어떤 것이라도 좋아했어요. 커다란 물고기. 해초나 해변. 심해와 섬. 그리고 각종 배, 잠수함이나 선원. 심지어 낚시까지도. 텔레비전에서 바다가 조금이라도 나오면 넋을 잃고 쳐다봤어요. 상어나 고래 같은 바닷속 생물에 관련된 내용이나 심지어 6시 내 고향에서 어촌이 나와도. 아이는 바다의 넓고 깊음에 그리고 그것이 불러오는 고요와 고독에 매료되었어요. 하지만 아이는 12살이 된 지금 까지 아직 한 번도 바다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답니다. 누구도 아이를 바다에 데려가주지 않았죠. 아이는 복지원에서 자랐어요. 기억의 처음은 복지원이어서 부모님이 누군지 알지 못했죠. 몸이 왜소하여 늘 혼자..
솔헤이마산두르 하늘과 땅이 맞닿은 채 끝없이 펼쳐진 차가운 흙들판에 오롯이 뻗은 길을 따라 걸었다. 이 길의 끝에는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가 있다고 한다. 말도 안 되게 맑은 하늘이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추웠다. 나는 차량 진입이 금지된 새카만 흙길을 따라 솔헤이마산두르 해변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1973년도에 추락한 미군 비행기가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온통 지평선과 거기에 맞닿은 구름 낀 하늘뿐이다. 간간이 보이는 안내표지판이 아니면 길을 잃기 쉬워 보였다. 지형지물이랄 게 아예 안 보이는 길. 어마어마한 공간의 풍경을 통해 나라는 하찮음에 도달하는 사유의 길. 묵묵히 길을 따라가다 보니 저 멀리 수송기의 실루엣이 보인다. 실루엣을 발견한 뒤로도 생각보다 한참을 걸어갔고, 수송기는 내..
골드힐 "여기가 유명한 골드힐이야. 영국에서 가장 로맨틱한 풍경의 언덕길이라고 해. 어떠니? 아빤 여기서 보면 길도 예쁘지만 낮은 집 지붕들하고 저 멀리 들판이 보이는 게 마음에 드는구나. 뒤쪽에 있는 교회는 성 베드로 교회라고 하고 옆 길로 쭉 내려가면 중세시대 수도원이었던 새프츠베리 박물관이 있어. 거기에는 어려서 죽은 성 에드워드 왕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대. 기적으로 유명한 왕이야. 그가 죽었을 때 시신이 부패하지도 않고, 주변의 아픈 사람들의 병이 나았다고 하더구나. “ 아들은 말없이 언덕에 서서 내 손을 잡고 골드힐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날씨가 좋았다. 하늘에는 얇게 비치는 천들을 펼쳐놓은 듯한 옅은 구름이 흩어져있었고 저 멀리 지평선이 그림처럼 가로지르고 있었다. 낮고 작은 벽돌 집들이 언덕길 ..
달리기, 고양이 한심했던 나의 젊은 시절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일단 분명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지금도 한심하다는 것. 어떤 부분들은 정말 바뀌지 않는다.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한심함이다. 따라서 나의 한심했던 젊은 시절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라는 문장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한심한 나의 예전 한심함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다. 무척 가난했던 기억이 난다. 기운차게 집을 박차고 나왔으나 먹을 것조차 없을 때가 있었던 그때. 자존심에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매일 늦잠에 가끔 친구 놈들을 만나서 술을 얻어먹고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우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젊었었다는 말이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 속이 편했다고나 할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살다 인생이 망해버릴 것..
My old bicycle 당신들도 몸의 延長으로서의 탈 것이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내 자전거가 내 몸의 연장인 또 하나의 신체기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5년 전 자전거를 사서 길을 들이고, 몇 가지 부품을 이것저것 테스트해서 가장 몸에 맞는 것으로 교체하고, 몇 번인가 타이어를 갈고, 거의 부서질 정도로 고장 났을 때 며칠 동안 아픈 짐승을 돌보듯 수리하다 보니 이제는 이 녀석의 모든 부분에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사이 최신 모델들이 계속 나왔고, 나 역시 새로운 자전거 카탈로그에 며칠씩 마음을 빼앗겨도 봤지만, 현관에 세워둔 나의 오래된 자전거를 볼 때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편안해지면서 결국 새 자전거를 구매할 마음을 접곤 했다. 안장에 오르면 이제..
토마스 커렐 1. 채텀 제도는 뉴질랜드 동쪽으로 8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섬들을 말한다. 채텀 제도는 1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큰 섬인 채텀섬과 두 번째로 큰 섬인 피트섬 그리고 그 외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채텀섬의 원주민은 평화를 사랑했고, 그들이 사랑한 평화로 인해 철저하게 멸종한 모리오리족이다. 채텀이란 이름은 최초로 이 섬을 발견한 영국의 선박 이름인 채텀에서 비롯되었다. 그 배의 이름은 영국 어느 귀족의 이름이라고 한다. 마오리족은 뉴질랜드를 아오테아로아-길고 하얀 구름이란 의미-, 채텀을 레코후-안개 낀 태양이란 의미-로 불렀다. 마오리족의 부족간 다툼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잔인했다. 전쟁으로 이긴 부족은 상대 부족을 노예화하고, 심지어 그들의 살을 먹었다. 마오리들은 식인..
자매 “지금 주님이 땅 위에 오신다면, 이곳과 같은 땅에 내려오신다면 말이야... 당신 어깨에 무엇을 메고 오실 것 같은가? 십자가? 아니야, 그건 석유통이네.” 아니타는 책을 한 손에 들고 읽으며 자신의 개인실 바로 옆 크리스티나가 있는 개인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가득했다. 크리스티나는 휠체어에 앉아 창가 옆에서 어두운 밤의 정원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왔니? 니코스 카잔차키스? 조르바?” 크리스티나가 아니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냐 크리스티나. 예수 십자가에 다시 못 박히다.” “그래 그 책이구나. 석유통이라니, 요즘이라면 수류탄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시끄러운 음악을 크게 틀고 창문을 있는 대로 몽땅 열어젖혀 둔 차를 모는 젊은 애송이들을 보고있자면, 오 예..
교도소 장마철 감시탑 초소는 후덥지근했다. 비는 그쳤지만 한여름 밤의 축축한 공기는 손으로 만져질 듯한 질감의 묵직함으로 초소를 가득 채웠다. 창문을 모두 활짝 열려있었고 벽에 붙은 선풍기는 강풍으로 내내 돌아갔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배어나왔다. 나는 손목시계의 야광 바늘이 새벽 2시를 10분정도 남겨놓은 것을 확인한다. 앞으로 십분이 지나면 근무교대다. 감시탑의 서치라이트를 제외하면 사방이 깜깜하다. 교도소 건물은 하루종일 더위에 지쳐 겨우 잠든 거대한 짐승처럼 시커먼 실루엣으로 땅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짐승같은 건물 주위로 정원과 잔디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와 개구리 소리가 가득했다. 자꾸 시계를 본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이 때가 제일 시간이 느린 구간이다. 어서 숙소로 돌아갈 생각만이 간절하다..
욕조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조금 우울하고, 자신감은 없어 보이지만 그 깊은 안쪽에는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이 있는. 소년은 한 소녀를 사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같이 있고만 싶었고, 이야기가 꽤 잘 통하는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어느 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꼬박 새우고 집에 돌아와 잠들기 위해 눈을 감던 새벽, 소년은 아, 맞다, 이게 사랑인가 보다. 수많은 시와 노래에서 말하던 사랑이란 게 나에게 찾아왔나 보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사랑이란 말인가?란 생각을 하게 된다. 소녀는 아름다웠다. 적어도 소년의 눈엔 그랬다. 소녀의 웃음소리, 말할 때 특유의 모양으로 움직이는 입술의 곡선, 다정하면서도 장난스러운 말버릇, 컵을 잡을 때의 손 모양, 걸음걸이, 머릿결과 색깔, 눈동자가 움직이는 방식..
햇살 모처럼 평일의 휴일이었다. 게다가 기가막히게 멋진 날씨였다. 일주일 넘게 흐리고 비가 내리던 날들이 지나고, 하늘은 거짓말처럼 파랗고 깨끗하게 저 높이 펼쳐져있었다. 쳐다보면 눈이 아릴 정도로 파랬다. 박물관을 향하는 발길은 가벼웠다. 투명한 공기, 여름에 신으려고 사둔 로퍼의 푹신함, 티셔츠와 반바지가 주는 느슨한 여유,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기분좋은 몸의 긴장감, 오는 길에 마주친 고양이 두 마리, 집을 나서면서 열어 본 더이상 버릴게 없이 깨끗하게 비워진 집 재활용 쓰레기통, 저녁에 만들어 먹을 메뉴인 피시앤칩스를 생각해 낸 것들이 박물관을 향하는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박물관에 도착하니 행복할 정도로 넘쳐나는 햇살 속에서 입장객들이 이미 줄을 서서 오후 입장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30분 ..
정원 자세한 내용은 기억은 잘 안나지만, 보르헤스의 '1983년 8월 25일'이라는 단편이 있다. 내 기억에 의한 내용은 이렇다. '나'는 어떤 집의 2층에서 늙은 자신이 누워있는 것을 본다. 그 남자는 나에게 내가 바로 수년이 지난 후의 당신이라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남자는 자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들로 자신의 말을 증명한다. 그리고 지금 이 만남의 기억은 이 방을 나가면서 지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잊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이 만남을 반드시 작품으로 남기겠다고 한다. 그러자 그 남자는 아마 그 것을 쓰면서, 당신은 또 다른 환상적인 단편 하나를 쓴다고 생각하게 될 뿐이라고 말한다. 꿈과 영원회귀의 莊子적 가불기. 그 남자가 사라진 빈 침대를 쓸어보던 나는 방과 건물을 빠져나온다. 그..
풍차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밤은 숙면을 허락하지 않았다. 밤새 알 수 없는 꿈과 느닷없는 기척에 뒤척이던 나는 새벽에 눈을 뜨고 한참을 이곳이 어디인지 생각했다. 다시 자려다 포기하고 집을 나선다. 아직 어둡다. 동네를 돌아 큰길을 건너 호숫가로 간다. 서서히 동이 터온다. 늦가을 새벽의 호숫가는 웃자란 갈대들이 가득했다. 호숫가는 새벽 어스름과 안개로 뿌옇게 보였다. 나는 산책로에서 갈대밭으로 들어선다. 얼마전 내린 비로 호수의 수위가 높아져있었고, 땅은 질척거렸다. 비릿한 민물냄새가 안개와 함께 코로 들어온다. 저 멀리 풍차가 우뚝 솟아있다. 풍차는 이제 막 동이 터 서서히 파래지는 하늘과 하늘에 밀가루처럼 곱게 흩뿌려진 얇은 구름을 배경으로 무겁고 고요하게 서있다. 어렸을때 자주 풍차안에 들어갔던 기억이..
사슴 꿈에 사슴을 보았다. 새벽이었고 산속이었다. 오랜 등반에 나는 무척 지쳐있었다. 산을 오를 때 새소리가 함께했고,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서러운 짐승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저기 정상이 눈앞에 있었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면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곧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거기에 작고 하얀 구름이 한 조각 걸려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사슴이었다. 사슴은 새벽빛을 받아 유난히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처음 볼 때는 웃는 듯 보였으나, 가까이 다가가 보니 긴 눈물자국이 서럽게 나 있었다. 나는 자세를 낮추고 사슴을 향해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경계하는 듯 내 얼굴과 손을 번갈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슴은 조금씩 다가와서는 손가락 끝의 냄새를 조심스레 맡았다. 사슴이 놀라지 않게 살짝 손을 뻗어 살살 이마..
폭포 "... 모자이크 방식을 사용한 것은 현대 사회가 디지털화된 화소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작품에서 디지털 세상의 자연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 '폭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림은 미술관 중앙 홀 가운데 걸려있었다. 중요한 작품이란 뜻이다. 작가 홍영지 화백이 직접 관객들 앞에 앉아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림을 가운데 두고 양 쪽으로 의자가 하나씩 있었고 왼쪽에는 홍화백이, 오른쪽에는 미술관에서 섭외한 큐레이터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작가로부터 직접 듣는 설명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균일한 모자이크는 아니고 굵은 입자로 구성했어요, 자연이란 아직 균일한 크기의 화소로 구성하여 표현하기에는 저에게는 벅찬 대상입니다. 어쩔 수 없이 화소의 ..
사냥2 그녀의 애인으로부터 메시지가 온다.  '저녁은 먹었음?'  휴대폰 화면을 보던 그녀는 앞에 걸어가는 세 남자 무리를 고개를 들지 않고 힐 끗 쳐다본다. 애인에게 답장 메시지를 보낸다.  '아니, 지금 먹으러 감 ㅎ'  '머 먹으려고'  '글쎄 산책하다가 아무데나 가서 먹던가 머 사다가 먹던가 하려고'  '어 나는 밥도 먹었고 씻고 자려고 함. 씻고 나와서 메시지 보낼게'  '응'  그녀는 자신이 보낸 메세지의 수신확인 표시가 없어질 때까지 휴대폰 화면을 쳐다본다. 앞의 세 남자 중 하나가 핸드폰을 확인한다. 그녀는 검은색 코트에 달린 커다란 후드를 얼굴이 안 보일 정도로 뒤집어쓴 채 차로변에 선다. 세 남자가 건너가길 기다린다. 그들이 건너편 인도로 건너간 걸 확인한 후 그녀는 핸드폰을 코트 주머니에 집..
사냥 창마다 불이 환하다. 나무로 된 허술한 울타리와 석조 대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소리도 없이 울타리를 부순다. 이 밤에 나를 지켜보는 건 환하게 뜬 저 보름달뿐이다. 내 눈으로 보름달을 본 이상 나에게 이런 울타리는 이쑤시개로 만든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일 뿐. 짧은 코트와 바지 속 근육이 부풀고 온몸의 피부에서 털이 자라는 간지러움을 느끼며 나는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길 초입에 선다. 달은 깨끗한 빛을 고요한 밤 위에 뿌리고 있다. 사냥하기 딱 좋은 밤이다. 나는 오늘 그녀를 사냥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초대한 친구들, 지인들 모두를. 그들 모두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어 씹어 먹을 것이다. 내 온몸을 그들의 피로 적시리라. 그녀의 집에는 창에 불이 모두 켜져 있다. 창문으로 사람들의 그림자가 오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