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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위에뜬기분이었어/나무사이그녀눈동자

풍차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밤은 숙면을 허락하지 않았다. 밤새 알 수 없는 꿈과 느닷없는 기척에 뒤척이던 나는 새벽에 눈을 뜨고 한참을 이곳이 어디인지 생각했다. 다시 자려다 포기하고 집을 나선다. 아직 어둡다. 동네를 돌아 큰길을 건너 호숫가로 간다. 서서히 동이 터온다. 늦가을 새벽의 호숫가는 웃자란 갈대들이 가득했다. 호숫가는 새벽 어스름과 안개로 뿌옇게 보였다. 나는 산책로에서 갈대밭으로 들어선다. 얼마전 내린 비로 호수의 수위가 높아져있었고, 땅은 질척거렸다. 비릿한 민물냄새가 안개와 함께 코로 들어온다. 저 멀리 풍차가 우뚝 솟아있다. 풍차는 이제 막 동이 터 서서히 파래지는 하늘과 하늘에 밀가루처럼 곱게 흩뿌려진 얇은 구름을 배경으로 무겁고 고요하게 서있다. 어렸을때 자주 풍차안에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집에서 혼났을때 내가 자주 도망치던 곳. 세상의 모든 것으로 부터 4개의 팔로 날 안아주고 지켜줄 것만 같던 그 곳은 이제 까페로 개조되어 드라이브하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맛없는 커피와 케이크를 팔고 있다. 풍차에 가려다, 어떤 이유인지 그러기 싫어졌다.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