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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위에뜬기분이었어/나무사이그녀눈동자

교도소

장마철 감시탑 초소는 후덥지근했다. 비는 그쳤지만 한여름 밤의 축축한 공기는 손으로 만져질 듯한 질감의 묵직함으로 초소를 가득 채웠다. 창문을  모두 활짝 열려있었고 벽에 붙은 선풍기는 강풍으로 내내 돌아갔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배어나왔다. 나는 손목시계의 야광 바늘이 새벽 2시를 10분정도 남겨놓은 것을 확인한다. 앞으로 십분이 지나면 근무교대다. 

감시탑의 서치라이트를 제외하면 사방이 깜깜하다. 교도소 건물은 하루종일 더위에 지쳐 겨우 잠든 거대한 짐승처럼 시커먼 실루엣으로 땅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짐승같은 건물 주위로 정원과 잔디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와 개구리 소리가 가득했다. 자꾸 시계를 본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이 때가 제일 시간이 느린 구간이다. 어서 숙소로 돌아갈 생각만이 간절하다. 

이윽고 초소 벽에 걸린 인터폰에서 벨이 울린다.  수화기를 든다.
3번 감시탑입니다. 이상없습니다.
근무 잘서고 있어? 교대자들 출발 했다. 수고했어. 이제 자러가자고.
곧 교대자가 온다는 당직실의 연락이다. 더워서 풀어두었던 장비들을 다시 맨다. 읽으려 가져온 책은 품에 숨기고, 간식과 쓰레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는다. 탑 아래에서 걸음 소리와 교대근무자 들이 서로 두런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려다보니 그들은 각자 근무할 감시탑으로 흩어져 가기 전 수고해나 꺼져라는 말들 따위를 주고받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3번 감시탑 아래 철문의 자물쇠를 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3층인 초소로 올라오기 위해 철 계단을 오르는 워커소리가 쿵쿵 점점 가까워진다. 드디어 초소문이 열리고 다음 근무자가 아, 존나 부럽다,라고 하면서 들어온다. 나는 간단히 이상이 없었다는 내용을 전달하고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감시탑 정문과 지하실 열쇠를 받아 나온다. 근무를 마치기 전 감시탑 지하실에 내려가 지하시설을 한번 둘러보고, 점검기록부에 싸인을 넣은뒤, 당직실로가 장비를 반납하면 끝이다.

교도소 감시탑 중 3번과 4번은 지하실로 연결되어 있었다. 매일 밤 3번 감시탑 근무자는 새벽 2시 퇴근 전에 지하시설을 한번 점검해야 했고, 4번 근무자는 아침 8시 퇴근 전에 지하실을 점검하게 되어있었다. 지하실은 과거에는 죄인들을 수감하던 교도소였지만, 건물을 3층으로 증축한 이후에는 텅 비어있었다. 그 후 간단한 수리를 거쳐 전쟁 등 유사시에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을 대피시키는 방공호로 활용 중이었다. 물론, 평소에는 비어있었다. 

3번 감시탑을 맡은 날에는 귀찮게도 이 곳을 퇴근 전에 한번 들러야 한다. 철 계단으로 지하로 내려가면 지하실로 통하는 철문이 나온다.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사무실 용도의 공간이 하나 있고, 들어온  반대쪽 벽에는 철창으로 된 육중한 미닫이 문이 있다. 철창 미닫이 문을 열쇠로 열고 밀면 문이 열리고, 양 쪽으로 수감자들이 들어가는 방들이 있는 긴 복도가 나타난다. 복도는 저 끝에서 오른쪽으로 ㄱ자로 꺾여있었다. 양쪽의 방문들은 굳게 닫혀있다. 사실 점검이래봤자 별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냥 복도를 따라 죽 걸으며 한바퀴 둘러보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점검 기록부에 이상없음이라고 적고, 서명을 하면 끝이다. 사람이 없는데 왜 점검을 해야 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규칙이 그렇다.

지하실에 내려가서 철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늘따라 유독 깜깜하다. 사무실로 들어서서 벽을 더듬어 전원을 스위치를 올리고, 조명을 켠다. 우웅 하는 메마르고 건조한 떨림이 지하실 빈 복도를 훑듯이 지나가며, 동시에 복도 천장 가운데 일렬로 설치된 등에 불이 켜진다. 환해지자 마자 나는 곧 다른 날과 다른 점을 하나 발견한다. 닫혀있어야할 방문 하나가 활짝 열려있었다. 복도 가운데의 오른쪽 방이다. 나는 잠시 서서 그 문을 바라본다. 소름이 끼쳤는데, 그 이유는 문이 열려서라기 보다는, 불이 켜질때 무엇인가가 복도에서 그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하게는 무엇의 그림자가 그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숨을 삼킨다. 내 숨소리와 전원이 들어와 전기시설들이 내는 신음같은 우웅 하는 소리만이 고요한 가운데 나즈막히 들려온다. 벨트에서 고무탄이 든 권총을 꺼내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식은 땀이 흐른다. 무엇일까. 사람이 없어야 하는 곳이다. 나는 귀를 기울여 보지만 아무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시선을 열린 철문에 고정시킨채 인터폰으로 다가가 인터폰을 들어 방금 내려온 감시탑 초소로 연락해본다.
3감시탑 근무자입니다.
나야, 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건조한 목구멍을 지나 갈라지듯 나왔다.
목소리가 왜그래, 말해
혹시 오늘 근무 오기 전에 지하 들렀어?
아니? 왜?
방문 하나가 열려있어서.
그래? 오늘 아침 점검자가 혹시…
갑자기 뚝 하고 인터폰이 끊긴다. 누군가 선이라도 자른 듯 끊어져버린다. 다시 감시탑을 호출한다. 먹통이다. 당직실 버튼을 눌러본다. 마찬가지다. 나는 여전히 열린 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노려본다. 철문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열쇠의 찰랑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꽉 쥔채 조심하면서 철창 미닫이 문의 자물쇠를 왼손으로 연다. 오른손에 든 권총의 안전장치를 해제한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철문을 연다. 복도로 들어가 한 걸음 한 걸음 열린 문쪽으로 다가간다. 평소와 다른 불쾌한 냄새가 풍긴다. 온 몸의 신경이 철문에 쏠려있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이제 문이 열린 방까지 한칸을 앞두고 있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발소리를 죽일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 안에 있는 것이 들을 줄 아는 존재라면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권총을 양손으로 잡고 철문을 겨냥하면서 서서히 열린 방쪽으로 몸을 옮긴다. 열린 방문을 바로 앞에 두었을 그 때, 갑자기 뒤 쪽 사무실에서 정적을 찢으며 인터폰 벨소리가 복도를 통과하며 쩌렁쩌렁  크게 울렸다. 삐리릭 삐리릭.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 자리에 주저 앉을 뻔 했다. 삐리릭 삐리릭 인터폰이 계속 울린다. 삐리릭 삐리릭. 나는 정신을 차리고 곧 뒤로 돌아 사무실을 향해 아 씨발이라고 외치며 있는 힘껏 달려갔다. 삐리릭 삐리릭 인터폰의 소리가 점검 커진다. 벨소리에 뇌가 휘저어지는 기분이 들고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댔다. 삐리릭 삐리릭 내가 처한 상황과는 상관없이 무자비하게 벨소리가 울린다. 사무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뒤쪽에서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삐리릭 삐리릭 소리를 뚫고 들려온다. 삐리릭 삐리릭.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열린 방 쪽을 돌아본다. 삐리릭 삐리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