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겨울의 초입으로 막 들어서고 있었다. 평일 오후 교도소로 향하는 도로변 풍경은 가끔 마주치는 안내 표지판을 제외하면 조용하고 쓸쓸했다. 레일라는 단조롭고 공허한 풍경 속을 자신의 낡은 코롤라를 몰며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버펄로 교정시설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무것도 없는 넓은 들판 왼쪽으로 건물의 실루엣들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게빈이 갇힌 교도소였다. 근처에 움직이는 것이라곤 그녀의 자동차뿐이어서 광활한 벌판에 서 있는 그 건물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 쪽을 쳐다보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 다가갈수록 그녀는 교도소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건물들의 집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회색 콘크리트 벽과 철조망이 교도 시설 주위를 빙 둘러 감싸고 있었다. 벽의 안쪽에 우뚝 솟은 감시탑들이 건물에 사선으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 벌판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건 교도소 건물뿐이었다. 그 외에 보이는 거라곤 벌판에 듬성듬성 서 있는 농업용 창고 몇 개뿐이었다. 그녀는 잿빛으로 뒤섞여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땅인지 알 수 없는 희미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과연 이곳이 자신이 사는 지구와 같은 행성인지 의심스러워졌다. 레일라는 실제로 교도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교도소라는 곳이 원래 이렇게 쓸쓸한 장소에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이 교도소가 유독 쓸쓸한 곳에 존재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입구에서 간략한 출입 절차를 마치고 안내에 따라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 면회객 통로를 통해 면회실로 들어갔다.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면회실 출입구가 다시 열렸고 레일라가 눈이 붉게 충혈된 채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게빈의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게빈은 약에 취해 총을 들고 가게로 들어가 술을 훔치려 했다. 그는 2년 형을 받았다. 그가 구속되었을 때 그녀는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얼마 안 가 유산하고 말았다. 그녀는 게빈과 아이를 떠나보낸 이후 처음으로 그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일 년 만에 본 게빈은 살이 조금 쪘고 얼굴 아래쪽 전체에 수염을 길러 인상이 많이 변해있었다. 레일라는 그런 게빈이 낯설었다. 게빈은 웃으며 레일라를 맞이했고 여전히 그녀의 가슴 쪽으로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둘은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어색함이 둘 사이를 맴돌았다. 어색함을 참지 못한 게빈이 먼저 자신의 교도소 생활과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애매한 미소로 그의 이야기에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이 찾아온 이유인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나 면회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그의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가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정말 끊임없이 주절거렸다.
게빈은 특히 빌리라는 제소자와 친한 것 같았다. 그는 빌리가 5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몇 주 뒤면 출소한다며 굉장히 아쉬워했다.
뭐 축하할 일이긴 한데 말이야. 어쩐지 모두가 나를 떠나는 기분이 들어. 여기 있다 보면 나와 이곳에 있는 인간들만 빼고는 모든 게 어딘가로 흘러가 버리는 기분이 들거든.
게빈은 덥수룩한 수염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헌데 그 자식은 어마어마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어. 언젠가 무슨 큰 비밀인 것 마냥 나에게 말하는 거야…. 자신은 사실 죄가 없고 다른 사람 대신 이곳에 온 거라고…. 웃기지 않아? 지가 무슨 예수야? 그리고 누군 뭐 죄를 짓고 여기 들어온 줄 아나…. 여기 있는 인간들은 모조리 입만 열면 자신은 무죄라고 하거든. 그 자식은 풋볼 경기에 빌린 돈을 걸었다가 모조리 날렸다나 봐. 한심한 놈. 아무튼 빌린 돈이 만 달러라던데, 그 돈을 갚는 대신 어떤 사람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기로 했다더군. 5년에 만 달러라... 그 정도면 괜찮은 건가? 잘 모르겠어…. 여기 들어와서 약을 끊고 나니 내가 더 멍청해진 거 같아. 현실 감각이 둔해지는 기분이야. 아무튼 그 녀석의 진짜 문제는 자신이 걸었던 경기에 승부조작이 있었다고 망상을 한다는 거야. 1991년 버펄로와 자이언츠 슈퍼볼 기억나? 세상에, 누가 버펄로에 걸어…. 미친놈이란 거지. 그 녀석의 죄는 돈을 갚지 않은 것보다 멍청함에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하…. 하지만 꽤 괜찮은 놈이야. 입은 험하지만, 사실 빌리는 뼛속까지 다정한 놈이거든. 부모님이 걱정할까 봐 여기 온 걸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명절이 되면 어딘가에서 잘 지낸다고 선물과 엽서를 보내는 놈이라니까….
게빈은 면회 시간이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주절거렸고 레일라는 끝내 하려던 말을 하지 못한 채 면회 시간이 끝나고 말았다. 모두가 떠나가는 기분이라는 게빈의 말을 막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게빈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은 단지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게빈에게 잘 지내라고 한 뒤 편지를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교도관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려다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잘 가. 이제 오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미안해, 미안해.
건물을 나와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레일라는 울먹이고 있었다. 그녀는 결국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못했고 게빈이 그 말을 대신해 준 셈이었다. 그는 그녀가 찾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이미 이별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어쩌면 훨씬 전에 예감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그녀가 없는 삶을 받아들인 듯 보였기 때문이다. 너는 내내 다른 말을 떠벌였지만, 그 말들이 사실은 전부 나를 잊으라는 의미였구나,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게빈이 자신에게 보여준 마지막 배려가 그녀를 울게 만든다. 그리고 게빈이 저 안에서 모두가 떠나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 것처럼 그녀도 지금 자기 인생의 무언가가 변하고 있고, 다시는 그것을 마주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구름위에뜬기분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