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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위에뜬기분이었어

버펄로 '96_07. 빌리 브라운

  빌리의 아버지는 가수였다. 물론 이름을 날릴 정도의 히트곡이 있지는 않았고 그저 지역 클럽을 돌면서 노래하는 밤무대 가수였을 뿐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레코드를 정식으로 녹음해 본 적도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술을 좋아했고 술에 취하면 가족들에게 자신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자신이 프랭크 시내트라가 부를 뻔한 곡들을 녹음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약간의 푸념을 섞어서 늘어놓았다. 빌리가 나중에 커서 알게 된 정확한 사실은 이렇다.

  버펄로의 음반 제작사 앰허스트는 프랭크 시내트라와 음반 계약을 원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인 프랭크와의 계약을 위해 회사는 그를 위해 노래 아홉 곡을 준비했다. 준비한 아홉 곡을 데모 테이프로 제작하여 그의 소속사로 보낼 계획이었다. 앰허스트의 섭외 담당자는 준비한 곡의 연주에 저렴한 가격으로 목소리를 녹음해 줄 데모 테이프용 무명 가수를 찾기 위해 지역 클럽을 돌아다녔는데, 우연히 빌리의 아버지가 노래하는 무대를 보게 된다. 섭외 담당자는 그 자리에서 한 곡당 30달러에 아홉 곡을 녹음하기로 그의 아버지와 계약하게 된다. 앰허스트는 프랭크의 소속사로 녹음한 데모 테이프를 보냈지만 1년간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회신이 없어 계약이 흐지부지해지자 그의 아버지는 프랭크의 소속사에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기회를 잃어버린 데 크게 낙담한다. 누구도, 심지어 앰허스트의 직원들조차도 그 데모 테이프의 존재를 잊어갈 무렵, 그의 아버지는 앰허스트의 녹음실 창고에 몰래 들어가 자신이 녹음한 데모의 마스터테이프를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훔친 마스터테이프를 자비로 복사하여 카세트테이프로 제작한 뒤, 지역의 음반 가게를 돌며 팔러 다녔다. 꼬마 빌리도 몇 번인가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의 영업을 따라다닌 기억이 있다. 테이프는 아버지가 만든 양의 절반도 팔리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테이프는 전국에서 보내온 다른 데모 테이프들과 함께 프랭크 시내트라의 소속사 창고에 쌓여있다가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고 한다.

  테이프 판매가 적자로 끝난 그즈음 빌리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는 날이 점점 늘었다. 가수로서 실패했다는 열등감에 고약한 술버릇까지 더해져 어머니와 자주 다투었다. 한 번은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 클럽에서 술에 취해 손님과 싸운 뒤 해고된 그의 아버지는, 그 일로 인해 어머니와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다. 한바탕 소동 끝에 어머니가 쓰러져 구급차까지 왔었는데 어린 빌리는 그때 어머니가 진짜로 돌아가시는 줄로만 알고 밤새도록 울었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로 술을 완전히 끊었다. 그리고 건강을 핑계로 밤무대 가수를 그만두고 테이프를 팔러 다니다 알게 된 작은 음반 가게에 점원으로 취직했다. 빌리의 집 창고에는 아버지가 팔다 남은, 프랭크 시내트라가 부를 뻔한 곡들을 아버지의 목소리로 녹음한 테이프가 박스에 담겨 높이 쌓여있었다. 아버지는 아주 가끔 기분이 좋으면 테이프를 거실에 크게 틀어놓곤 했다.

  “천사들도 피하는 곳으로 가는 건 바보 같지만,
  저는 당신에게 갑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시키기에,
  위험해 보일지라도, 기회만 잡을 수 있다면 저는 상관없답니다.
 
  현명한 사람은 절대 가지 않는 곳으로 가는 건 바보 같지만,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절대 사랑이란 걸 모른답니다.
  그들이 어찌 알 수 있을까요.
  당신과 같이 있을 때야 비로소 내 인생이 시작한다는 걸
  그러니 당신, 마음을 열어 이 바보를 받아주오...”
 
  그럴 때면 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꽤 들을만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쓰러진 그 날 이후 성격이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기억력이 무척 나빠졌다. 근래의 일은 물론 과거의 일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빌리는 어릴 때부터 초콜릿 알레르기가 있어서 초콜릿에 닿은 부위가 붉게 부어올랐고, 탄산음료를 마시면 반드시 설사하곤 했었는데, 어머니는 그 사실을 완전히 잊은 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에게 초콜릿이 든 간식이나 콜라를 가져다주곤 했다. 빌리는 몇 번이고 어머니에게 자신이 초콜릿과 탄산을 먹으면 고통스럽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짜증을 내며 어머니에게 상기시켜야만 했다.

  그런 빌리의 어머니가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게 기억하는(또는 망각하는) 게 있었다. 버펄로 빌스와 캔자스 시티 치프스의 1966년 아메리칸 풋볼 리그(AFL) 결승전. 그녀는 이 경기를 기억하면서도 망각했다. 어떤 일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망각한다는 게 가능할까? 그의 어머니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그녀는 1966년의 아메리칸 풋볼 리그 결승전에 관해서는 기억함과 동시에 망각했다. 그녀는 1966년 아메리칸 풋볼 리그 결승전이 열린 사실 자체는 기억했지만, 경기의 결과는 완전히 망각한 듯 보였다. 그녀는 당시 경기를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매일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돌려봤다. 그리고 그 경기를 볼 때면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매번 완전히 몰입해서 큰소리를 지르며 열성적으로 버펄로 빌스를 응원했다.

  1966년은 아메리칸 풋볼 리그가 열린 마지막 해였다. 이듬해인 1967년부터 아메리칸 풋볼 리그와 내셔널 풋볼 리그(NFL)의 통합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66년은 각 리그 우승팀끼리 맞붙기로 되어있었다. 이 경기가 슈퍼볼의 시작, 슈퍼볼 1이었다. 당시 버펄로 빌스는 1964년과 1965년, 2년 연속으로 아메리칸 풋볼 리그에서 우승한 강팀이었다. 그 해, 그러니까 아메리칸 풋볼 리그의 마지막 해인 1966년에 버펄로 빌스는 다시 한번 아메리칸 풋볼 리그 결승전에 진출했고, 이 경기에서 우승할 경우 슈퍼볼 1에 진출하여 내셔널 리그 우승팀과 겨룰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버펄로 빌스는 이 경기에서 상대 팀 캔자스 시티 치프스에 31-7로 완패한다. 

  매일, 몇 번이고 빌리의 어머니는 1966년 아메리칸 리그 결승전의 버펄로 빌스를 목이 터져라 응원했고(달려라 잭! 그 자식을 날려버려! 어서 앨버트에게 패스해! 어서!), 경기를 녹화한 테이프가 다 돌아가고 나면 항상 새롭게 우울해했다. 그즈음 빌리의 집은 어머니가 끊임없이 사들인 버펄로 빌스의 포스터, 버펄로 빌스의 로고가 박힌 수건, 버펄로 빌스의 유니폼, 버펄로 빌스의 점퍼 같은 버펄로 빌스 물건들로 가득했다. 빌리의 어머니는 버펄로 빌스 점퍼를 걸치고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곤 했다.

  빌리는 이제 버펄로 빌스나 풋볼이라면 지긋지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