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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위에뜬기분이었어/나무사이그녀눈동자

잔디

 

그녀는 그 사진을 자신의 구글포토에서 찾았다. 그때 우리(미국 여자 축구 대표팀을 말한다.)는 세계 최고였지만, 그녀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남편은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여자 서퍼와 바람이 나있는게, 어제 거의 확실해졌다. 남편의 차에서 노란 비키니 수영복 하의가 뒷 좌석 아래 쑤셔박혀있는 걸 그녀가 꺼내들었을 때, 그 안에서 천박한 붉은색의 가짜 손톱도 같이 튀어나왔다. 막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 스코티는 동급생과 학교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다 들켜서 지난 달 부터 수업을 받는 대신 학교 상담센터로 등교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 오전, 그녀는 학교 상담센터에 스코티와 같이 가서 상담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했다. 덴버에 혼자 계시는, 평생 군인으로 복무하셨던 아버지는 2년 전부터 알콜중독과 당뇨와 고혈압으로 계속 진료를 받아왔고, 최근에는 치매가 심해져서 간병인이 필요했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경제적 부담도 전부 떠안고 있었다. 그녀가 속한 대표팀은 잘 나갔고, 그녀의 수입 역시 꽤 괜찮은 편이었지만, 최근 아버지는 치료가 아닌 것- 주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 티켓값이나 호텔비, 골프장에 대한 경비 등 - 에 대한 요구도 점점 심해졌다. 두 살 위 오빠가 있었지만 그녀가 스무살에 대학 대표팀 주장으로 선발되던 해, 8살 연상의 여자와 아버지의 재산을 용의주도하게 빼돌려 도망간 뒤 연락이 끊겼다.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집을 나와 훈련을 하러 가는 것이 그녀에게는 당시 그 무엇보다 구원이었기 때문이다. 이 곳에 오면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의 몫을 해내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되었다. 파란 잔디는 우리팀 모두에게 공평했고, 심지어 상대하는 팀의 팀원들에게도 공평했다. 일상이 힘들때면, 상대와의 경기가 성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방금 그녀는 훈련을 마치고 라커룸에서 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부재중 전화가 한통 있었다. 학교 상담센터 번호다. 불안한 마음에 학교 상담센터로 전화를 해보니, 스코티가 상담 선생을 때려서 경찰서에 구금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곧 가보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고보니, 아버지와 남편의 메세지가 와 있었다. 아버지는 친구와 함께 캘리포니아에 유명한 노인성 치매 명상치료사를 찾아가보고 싶다는 메세지 였다. 필요한 경비가 적혀있었다, 사랑하는 내 딸, 이라는 마무리와 함께. 남편은 오늘 집에서 할 얘기가 있다는 메세지였다. 메세지는 '당신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폰을 닫으려다 증거를 위해 찍어둔 남편 차에서 발견한 그 노란 비키니 하의와 빨간 손톱  사진을 확인하기위해 무심코 스크롤을 하던 순간, 그녀가 경기 중에 찍힌 사진을 발견했다. 1년 전이었다. 아마 스웨덴 대표팀과의 경기인 듯 하다. 누가 찍은 사진일까, 기자가 찍은 사진을 따로 저장해 둔 것일까. 아무튼 그녀의 표정은 당당하다. 그녀는 동료를 믿고 있고, 일상의 무게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행복해 보인다. 그녀는 그녀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혼란 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