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구름위에뜬기분이었어

알케이데스라 불렸던 사내

때로 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네.
 ‘너의 운명은 특별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축복해 주어라 - 그렇게 괴로워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느니라.’하고.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영웅들이 꾸는 꿈은 위대한가? 그들은 어떤 꿈을 꾸는가? 그는 눈앞에 누워 거칠게 숨 쉬고 있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사자를 보고 있다. 그의 몸에는 여기저기 사자의 발톱과 이빨로 인한 상처로 피가 흐른다. 숨을 몰아쉬는 사자는 그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오랜 싸움으로 힘이 다한 듯 힘겨워 보인다. 둘은 얼마동안이나 싸워왔던 것일까. 그는 사자에게 다가가 지친 사자의 목을 천천히 팔로 감는다. 그가 팔로 목을 감는 동안 사자는 포기하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가 사자의 머리를 감은 팔에 마지막 힘을 주어 조르기 시작한다. 사자가 그의 몸에 남긴 상처들에서 피가 배어 나온다. 마침내 사자는 혀를 길게 빼물고 침을 길게 흘리며 눈이 흐려진다. 사자의 고통스럽고도 짓눌린 숨소리가 얇고 넓게 사방에 퍼진다. 그 소리가 끊기고도 한참을 팔에서 힘을 빼지 않던 그는 자신의 숨소리 외에는 사방이 어둡고 고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죽은 사자를 밀어내고 주저앉아 밤하늘을 바라본다. 조용한 달이 하늘 가운데 떠있었다. 질그릇에 담긴 포도가 사방으로 향기를 퍼트리며 달콤하게 술로 익어가는 마법 같은 이런 밤들이 오면, 그는 꿈을 꾸었다.

  커다란 회랑이었다. 방은 둥그렇고 천장이 높았다. 둥근 공간을 둘러 싼 천장과 벽은 온통 새하얗다. 그는 발가벗은 채 홀로 회랑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고 주위를 둘러봐도 벽에는 문이나 심지어 창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어디를 통해 이곳에 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회랑은 마치 그를 그곳에 세워둔 채 세워 올려진 곳 같았다. 하얗고 둥근 벽에는 빙 돌아가며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회랑이 너무 넓어 그가 서있는 가운데에서는 그림의 윤곽만이 희미할 뿐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림을 보기 위해 벽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벽은 생각보다 터무니없이 높고 넓어 멀리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무슨 그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그림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 적당히 거리에 서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그림은 한 사내가 괴물들과 싸우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었다. 그림은 둥근 벽을 따라 죽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그가 보는 그림은 한 사내가 거대한 숫사자의 목을 한 팔로 감아 조르는 그림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사자는 흉폭해 보였고 사자의 목을 감은 사내 역시 무척 강해 보였다. 사내와 수사자의 처절한 싸움을 보여주듯 부러진 창과 화살, 몽둥이가 주변에 그려져 있었다. 그 옆의 그림은 머리가 여럿인 괴물과 사내 둘이 싸우는 그림이었다. 그 괴물은 비늘이 덮인 용과 같은 몸통에 6개의 긴 목이 달려있었고 목의 끝에는 늑대 같은 얼굴들이 달려있었다. 괴물의 머리 하나는 잘려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괴물의 앞에 선 사내는 몽둥이로 괴물을 내려치려 하고 있었으며 괴물의 뒤에 있는 사내는 괴물의 잘려나간 목을 불로 지져대고 있었다. 그는 계속 걸어가며 그다음 그림을 본다. 역시 벌거벗은 사내가 커다란 뿔이 달린 흰 사슴의 뿔을 붙잡고 넘어뜨리는 그림이었다. 다음 그림에는 사내가 몽둥이를 두손으로 잡고 휘두르려 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몽둥이가 지나갈 예정인 궤적에는 시커멓고 거대한 멧돼지가 엄니를 번뜩이며 남자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는 각각 그림 속의 사내들이 동일인으로 생각되었다. 이 그림들은 한 사내가 겪은 일을 그려놓은 것 같았다. 저 사내는 누구일까... 그림 속 사내의 얼굴은 윤곽과 음영만이 간략하게 묘사가 되어있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는 다음 그림으로 향했다. 이제 그 사내는 강가에 앉아 등에 돌을 지고 뒤로 밀어젖히고 있었다. 그가 돌일 밀어젖힌 곳으로 강물이 흘러 저 아래 가축우리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다음 그 사내는 사람의 얼굴과 젖가슴을 가진 괴물 새를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었고 다음은 거대한 황소를 어깨에 거꾸로 둘러메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림은 점점 묘사가 세밀해져가고 있었다. 처음 몇 그림에서 윤곽과 음영만으로 그려진 얼굴이 이제는 수염과 눈썹과 눈동자가 구분되어 그려져 있었고 표정도 희미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내의 얼굴은 그에게 낯이 익었다.

  사내는 한손에 몽둥이를 들고 다른 손으로 커다란 말의 고삐를 움켜쥐고 있었다. 고삐가 가죽이 아닌 쇠사슬로 되어있는 걸 보니 다루기 쉬운 순한 말로 보이지는 않았다. 사내와 사내에게 쇠고삐를 잡힌 말의 뒤에는 역시 쇠고삐를 찬 다른 말 한 마리가 머리를 굽히고 사람을 산채로 뜯어먹고 있었다. 그 사람의 발치에는 왕관이 나 뒹구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에서 그는 거의 사내를 알아볼 뻔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다음에 그는 한 여인을 말에서 끌어내려 죽이고 있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 그림에서는 몽둥이를 들고 머리가 셋 달린 노인을 후려치려고 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사내는 뒷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알아볼 수 없었다. 어느덧 마지막 그림이었다. 사내는 무릎을 굽힌 채 어깨와 등에 거대하고 둥근 무엇인가를 힘겹게 지고 있었고, 등에 진 그 둥근 무엇에는 해와 달과 별이 그려져 있었다. 그의 발치에는 사과 몇 알이 굴러다녔다. 회랑의 그림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지나온 그림들을 다시 한번 눈으로 빙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는 사내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꿈은 밤이 되었다.

  어두운 동굴이다. 그는 어깨에 큰 개를 한마리 둘러업고 걷고 있다. 개는 아픈 듯 눈을 감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낑낑댄다. 개의 입에서는 침이 늘어져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린다. 동굴에는 빛이 없어 어두운 동굴 벽을 손으로 더듬으며 나아간다. 그의 손에 닿는 동굴벽이 차갑고 미끌거린다. 숨을 쉴 때마다 코로 축축한 동굴의 냄새와 개의 숨냄새가 섞여 들어온다. 그는 길 옆에 누군가 돌 위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한다. 어두워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어 그는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는다. 대답이 없다.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만지면서 살펴보니 아는 얼굴이다. 앉아있던 사람은 놀랍게도 몇 년간 연락이 끊겨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였다. 그는 친구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여전히 대답 없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볼 뿐이다. 자네 나를 못 알아보겠는가라고 다그치자 그제서야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모르겠소. 아니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겠소라고 말한다. 그는 친구의 손을 잡아끌어 일으키려 하지만 엉덩이가 돌에 붙은 듯 꿈쩍도 안 한다. 그는 몇 번인가 용을 쓰다 둘러멘 개를 바닥에 내려놓고 두 손으로 친구의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넣어 있는 힘껏 들어 올린다. 실제로 엉덩이는 돌에 붙어있었다. 그가 계속 힘을 쓰자 어느 순간 살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고통스러운 비명이 동굴에 울려 퍼진다. 친구는 엉덩이 살갗이 돌과 떨어지며 조금 찢어졌지만 마침내 돌에서 떨어진다. 그는 돌에서 떨어지자마자 엉덩이에서 피가 흐르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구해준 친구의 얼굴을 얼싸안으며 놀라운 표정을 짓는다. 아니 이게 얼마만인가! 자네를 참 오랜만에 보는군. 도대체 여긴 어디인가?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무튼 날 구해줘서 정말 고맙네라며 큰 소리로 외친다. 그와 동시에  그는 걸어왔던 동굴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와 진동을 느낀다. 친구는 아마도 자네가 날 일으켜서 동굴의 주인이 화가 난 게 분명하군. 동굴이 안쪽부터 무너지는 것일세. 여기서 어서 빠져나가세나. 라며 그의 등을 떠밀며 재촉한다. 그는 바닥에 누운 채 고개를 옆으로 누이고 벌어진 입으로 헐떡거리며 침을 흘리고 있던 개를 다시 어깨에 둘러메고 친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동굴이 무너지는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가까워진다. 둘은 앞을 향해 뛰기 시작하지만 친구는 엉덩이의 상처로 절룩거리며 뒤쳐진다. 이제 소리가 지척이다. 돌아보니 그가 지나온 길을 삼키며 천장이 무너져내려오고 있다. 이대로는 깔리고 말 것 같다. 급기야 그는 한 손으로 친구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곧 눈앞의 천장과 벽이 무너진다. 친구의 비명소리와 개의 숨냄새. 그리고 또 밤. 그는 잠에서 깬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방 침대에서 눈을 떴다.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방을 환하게 밝히고 있어 눈이 부셨다. 그는 부신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턱수염에 무언가 진득한 게 묻어있었다. 혀로 맛을 보니 죽같았다. 침대 옆 탁자에 죽그릇과 숟가락이 놓여있었고 그릇 안에는 죽이 3분의 1쯤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죽을 닦아낸 작은 수건이 놓여있었다. 침대의 발 쪽에는 수의로 보이는 옷이 잘 개켜져 있었다. 그는 머리가 아팠고, 언제부터 잠이 들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섰다. 그의 아버지가 집에 와 계셨고 아버지와 아내와 아들 셋이 모두 한 방에 모여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살아있는 동안에는 결코 입을 일이 없는 수의를 차려입고 있었다. 방 안에서 무언가 얘기를 나누고 있던 가족들은 잠에서 깨어나 방에 들어오는 그를 보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인, 어찌하여 불길하게 수의를 입고 있는 것이오. 아버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의 목소리를 들은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아 어찌하여 이리 늦게 깨어나시었나요 당신. 어찌하여 진작 깨어나지 않으셨던 건가요. 당신이 긴긴 잠에 취해 깨어나지 못하는 동안 이 나라의 왕이셨던 저의 아버님이 살해당하셨어요, 당신의 장인어른이요.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그 살인범이 이 나라의 왕이 되어, 저희 집안의 씨를 말리려고 하고 있답니다. 도대체 왜, 왜 이제야 깨어나셨나요. 그녀는 눈물에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어린 아들들도 제 어미의 울음에 덩달아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어리둥절하여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님 이게 다 무슨 소리입니까? 장인어른이 살해되셨다고요? 그리고 그 살해범이 왕이 돼서 우리 집안사람들을 죽이려 한다고요?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의 아버지는 슬픈 눈빛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그렇다 아들아. 우리는 네가 꼭 죽을 것으로만 알았다. 한 달을 넘게 깨어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숨은 쉬고 있으니 우리는 네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릴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새 왕은 오늘까지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너를 죽여 장례를 치루라고 명령하더구나. 아들아, 새 왕은 너의 장례식을 빌미로 우리 모두를 죽이려 하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래서 나는 짐승같이 살해당하기 전, 명예를 위해 미리 수의를 너와 네 아내와 손주들에게 입히려고 하였다. 그는 악몽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수의를 손으로 만져보고 우는 아내와 아이들을 달래면서 곧 눈앞의 비극적인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집 앞에 말들의 발굽소리와 커다란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왕이 납시었도다. 왕이 납시었도다. 어서 나와 왕께 경하를 드리라. 왕이 납시었도다.

  그는 그 소리를 듣자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 저는 그렇다면 세상의 목을 졸라 숨통을 끊어 놓겠습니다. 아버지를 향해 말을 마친 그는 아내에게 부인은 아이들을 잘 챙기고 있으시오. 나는 잠시 문 앞에 다녀오리다.라고 한 뒤 자신의 방으로 가 침대에 놓여있던 수의를 입었다. 그리고는 문을 박차고 그의 집 앞에 말을 타고 몰려있는 왕과 왕의 병사들 앞에 나섰다. 왕과 그의 병사들이 말 위에서 수의를 입고 분노로 충혈된 눈빛으로 문 밖에 나선 괴이한 모습의 그를 동시에 바라보았다. 그는 외쳤다. 너희들이 오늘 죽기위해 이곳으로 왔구나. 나는 태어나자마자 나를 죽이러 내 어머니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온 뱀을 첫울음을 위해 입을 떼기도 전에 한 손으로 잡아 죽였다. 나는 여신의 젖을 먹고 자랐으며, 뼈가 채영글기도 전인 어린 시절에는 맨 손으로 사자를 때려잡은 적이 있었다. 나는 네메아의 사자와 히드라와 스팀팔로스의 사람 잡는 새들과 디오메데스의 사람을 잡아먹는 말들을 잡아 죽였다. 그리고 나는 지옥에서 케르베로스의 목을 잡아끌고 막 올라왔노라. 오늘 여기에 온 너희들 가운데 이러한 일을 한 나와 같은 자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너희들은 수의를 입은 내 손에 모조리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러자 왕이 병사들에게 큰 소리로 외쳐 명령했다. 저 자가 아직 잠꼬대를 하는 걸 보니 잠이 덜 깬 모양이다. 저자를 죽여 머리를 가져오는 자에게 왕국의 가장 큰 지역을 다스리게 하고 이 자의 부인을 그에게 노예로 주겠노라. 이 자의 재산 역시 한 푼 남김없이 모조리 그에게 주겠노라. 죽여라. 왕이 명령을 마치자 그의 눈에 비친 왕과 병사들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왕과 병사들의 눈이 짐승의 눈으로 변하며 충혈되어 갔으며 주둥이는 튀어나오고 잇몸에는 무시무시한 송곳니가 자라나 왔다. 그들의 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선 발톱이 튀어나왔다. 잿빛 털이 돋아나 온몸을 덮었다. 왕의 병사들은 그렇게 늑대 떼가 되어 큰 소리로 짖으며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싸움은 반나절이나 계속 되었다. 그가 주먹을 뻗을 때마다 느껴지는 두꺼운 근육덩이. 그리고 살 안쪽에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 두 손으로 상처를 열고 막 뽑아낸 뜨거운 심장의 박동. 그의 등과 옆구리를 파고드는 이빨들. 바닥에 흩 뿌려지는 피와 살덩이들. 계속해서 들리는 길고 높은 늑대의 울음소리. 뽑혀 나온 늑대의 붉게 충혈된 눈알들. 그의 집 앞은 늑대의 조각난 몸과 피로 붉게 물들어 갔고 하늘 역시 노을로 붉게 물들어 갔다. 그는 지칠 줄 모르고 늑대 무리의 숨통을 끊었다. 결국 홀로 남은 왕은 그에게 쫓겨 그의 집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의 눈은 살육의 흥분으로 타올랐다. 피 투성이인 그는 늑대 왕을 쫓아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 안에는 사자들이 있었다. 한쪽 구석엔 그의 아버지가 혼절한 것인지 돌아가신 것인지 정신을 잃고 누워있었고, 커다란 수사자와 암사자 그리고 그 뒤의 젊은 사자 무리들이 송곳니를 드러낸 채 으르렁대며 그에게 살의를 드러냈다. 사자들의 입과 발톱에는 한 마리도 빠짐없이 피가 묻어있었다. 바닥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입고 있던 수의가 피투성이가 되어 찢겨 있었다. 그는 사자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반쪽 엉덩이라는 별명이 생긴 그의 친구가 절룩거리며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그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의 집 앞에 피칠갑을 한 채 서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인 병사들의 시체 앞에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있었다. 그의 친구는 지옥 같은 광경을 돌아보고는 말없이 절룩거리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왕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자식들이 참혹하게 찢겨 죽어있었다. 방의 한 구석에는 그의 늙은 아버지가 혼이 나간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의 친구와 눈이 마주친 늙은 아버지는 고개를 흔들며 고개를 떨구었다. 친구는 병사들에게 그의 아내와 아들의 시체를 수습하도록 명령한 뒤 집 밖으로 나갔다. 나를 죽여주게. 그가 고개를 숙인 채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네. 나는 지금 자네 얼굴을 볼 용기조차 없다네. 친구가 물었다. 자네가 아내와 아이들을 죽인 것인가? 그렇다네. 나는 그들이 왕이 보낸 짐승들인 줄로만 알았다네. 그 짐승들이 아내와 아이들을 잡아먹은 줄 알았다네. 나는 살아있으면 안 되는 존재일세. 이대로 날 죽여주게. 내가 자네를 지옥에서 구해주었던 것처럼, 제발 자네도 나를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나를 구해주게. 

  테세우스는 이제는 어두워진 하늘을 보면서 오 신이시여,라고 탄식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이 친구야. 내 자네가 지금 내게 하는 부탁을 언젠가는 반드시 들어줌세. 하지만 그 전에 신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게 우선일 듯 허이. 신이 자네를 위해 준비한 운명이 이런 것이고, 반드시 죽어야만 이 죄를 씻을 수 있다고 한다면 내 이 손으로 직접 자네의 목숨을 거두게 해 주십사 신들께 직접 부탁드리겠네. 알케이데스, 나와 같이 델포이로 가세나.

  여기 개인적인 선호에 의해 짧은 후일담을 적어둔다. 그는 테세우스와 델포이로 가서 한 무녀로 부터 신탁을 받게 된다. 무녀는 그에게 헤라의 영광이라는 의미로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을 지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