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고양이

한심했던 나의 젊은 시절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일단 분명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지금도 한심하다는 것. 어떤 부분들은 정말 바뀌지 않는다. 나에게는 그것이 바로 한심함이다. 따라서 나의 한심했던 젊은 시절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라는 문장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한심한 나의 예전 한심함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다.
무척 가난했던 기억이 난다. 기운차게 집을 박차고 나왔으나 먹을 것조차 없을 때가 있었던 그때. 자존심에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매일 늦잠에 가끔 친구 놈들을 만나서 술을 얻어먹고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우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젊었었다는 말이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 속이 편했다고나 할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살다 인생이 망해버릴 것 같아 무섭다. 그러나 그때는 단지 오늘 저녁이나 길어야 일주일 정도의 일들만 머리에 새겨 넣고 정말 아 무 것 도 하 지 않 았 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이란 걸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어떤 건지 잘 모르는 사람도. 이것은 단순히 돈을 벌지 않고 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활에 있어 어떠한 지향도 없는 상태. 시간이라는 기차에 타서 주변 풍경을 보기는 커녕 잠만 자는 상태. 종착지가 어딘지 혹시 지나친 건 아닌지 전혀 모르는 상태. 나는 그때 24시간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적도 있다. 계속 잠을 잔 것은 아니다. 그냥 자고 깨고 그 잠자리에 계속 있는 것이다. 단지 화장실을 위해서만 일어난다. 무언갈 먹으려 해도 먹을 게 없다. 사 오면 되지만 최대한 참는다. 화장실 역시 최대한 참는다. 귀찮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게 없고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는 상태. 그나마 가끔 돈이 필요하면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 공사판 잡일을 하고 일당을 받았다. 그 돈으로 담배를 사고 음식을 사 먹었다. 영양이란 건 고려대상이 당연히 아니었다. 입맛을 자극하는 싸구려 음식들을 계속 먹었다. 특히 편안함과 만족감에서 과자만 한 것이 없었다. 이렇게 나는 나의 하루하루를 값싸게 지불하면서 말초적인 자극에만 집중하면서 견디고 있었다. 물론 이따금 마음속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못 본 척하고 조금 기다리면 곧 다른 생각이 그 생각을 밀어내고 나를 구원해 주었다. 아니면 가끔 포카칩이.
오랜 권태는 나를 조금씩 잠식했다. 배가 나왔다. 아무리 자도 피곤했다. 하고 싶은 것만 했다. 필요한 것만 최소한으로.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횟수가 뜸해졌다. 아니 밖에 나간 지 몇 주는 된 것 같다. 핸드폰은 요금을 내지 않아 끊긴 지 오래다. 어차피 올 연락도 없었다. 밤에 잠에서 깨어 누운 채로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천장의 무늬를 내 맘대로 이어보거나 벽지 무늬사이를 찾아 미로 찾기를 할 뿐이다. 혼자서 끝말잇기도.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렇게 썩어가고 있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보니 양 허벅지에 배가 닿았다. 거울을 보니 지저분한 수염과 엉킨 머리에 처진 턱살이 보였다. 꼴 보기 싫었다. 갑자기였다. 나는 갑자기 번뜩 놀라 창문을 열었다. 초여름의 화창한 오전이었다. 이름 모를 새소리. 조용한 거리. 어딘가에서 흘러오는 찌개냄새. 며칠간 물 외에 입에 넣은 건 담배 연기뿐이었다. 급한 절벽으로 낙하하듯 갑자기 깊어지는 허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권태의 권태를 느낀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의 귀찮음. 나는 대충 씻고 친구가 일하는 피시방으로 갔다. 오랜만에 걸으니 풍경이 내 뒤로 밀리는 모습이 어색하고 현기증이 난다. 심지어 멀미가 난다.
허이구 살았었네
친구는 손님 테이블을 닦고 카운터로 걸레를 들고 들어오다 나를 보고 놀란다.
야. 안 죽어지더라. 바빠?
아니. 30분이면 끝나.
그래. 나는 대답하고 카운터 그 녀석 옆자리 의자에 앉아 피시방을 둘러본다.
평일 낮이라 한산하다. 키보드와 마우스 움직이는 소리, 카운터에 켜둔 티브이의 소리. 친구는 다음 근무자에게 인계하기 위해 매출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나는 피시방의 화면과 사람들과 친구를 보면서 오랜만의 바깥세상에 적응하려 애썼다.
어디 있었어.
집.
집?
그래, 집.
맞아 너 전화 안되던데? 또 끊겼냐?
응
미친 새끼. 너 여기서 일하라니깐. 존나 편해. 야간 알바생 하나 이번 달에 그만둬. 지금 뽑고 있는데 내가 떡배형한테 말해줄게.
덕배 형은 피시방 사장이다. 김덕배. 화가 나면 무섭다. 언젠가 술 먹고 진상 부리는 문신한 떡대 둘을 대걸래로 조져서 내쫓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대걸레에 처맞던 한놈이 칼을 꺼내 그었고, 떡배형의 허벅지에 칼이 스쳐 상처가 낫다. 떡배형은 곧 그 녀석 아구에 주먹으로 이빨 몇 개인가를 날려 보냈다. 경찰이 맞은 두 놈과 떡배형을 데리고 갔다. 형은 나에게 가게 좀 봐주라면서 경찰을 따라나섰다. 잠시 후 한 손님이 일어나서 키보드에 이빨이 박혀있다며 바꿔달라고 했다. 나와 친구들끼리만 있을 땐 떡배라고 부른다. 형은 우리들이 나온 고교의 선배이기도 하다.
응. 나중에.
나중에. 미친놈 너 하고 싶을 때 자리가 있을 거 같아. 아주 골라서 하려고 그러네. 뭐 하는 것도 없잖아.
녀석은 정산을 마무리하며 컴퓨터 화면과 금전등록기의 현금, 카드 매출표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그때 적응 중이어서 조금 귀찮았다.
아 알았어. 씨발 나중에.
에휴. 알았어.
돈 좀 빌리러 왔어.
돈?
응 십만 원만
녀석은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돌아보고 내 행색을 위아래로 스캔하면서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납득한 표정을 짓는다.
아. 알았어. 끝나고 나가면서 은행에서 찾아줄게. 그리고 밥이나 먹자. 끝날 때까지 기다려, 성진이도 부를까?
아니 그냥 돈만 빌려줘.
미친놈아 아 밥 좀 먹자고. 너도 못 먹은 거 같은데.
시발롬… 너밖에 없다.
가게 앞 콩나물 국밥집에서 국밥과 모주를 시키고 앉았다.
생각 좀 해 봐. 오늘 안에. 떡배가 네가 일한다 하면 별 말 안 할 거야. 떡배가 너 귀여워하잖아.
알았어. 전화할게.
전화 끊겼다며 전화는 어떻게 하려고. 씨발롬 또 대충 넘기네.
아하! 나는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을 하면서 집게손가락을 펼쳐 세우고 웃었다.
아 미친 새끼 좀 지랄 좀 하지 마라 제발. 그냥 죽어버려. 얼마나 밀렸는데?
몰라 한 4~5만 원?
내가 빌려줄게
정말? 시발놈. 너 부자구나. 왜 나를 자꾸 사회에 복귀시키려고 노력하는 거야. 히히.
그때 국밥집 사장님이 국밥과 모주를 들고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개소리 말고 밥이나 쳐드세요.
나는 실로 오랜만에 보고 맡는 음식 모양새와 냄새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와 존나 오랜만에 먹는 거야. 사실 3일 동안 먹은 거라곤 요구르트 한 개뿐이거든. 담배 하고.
인간아... 너 그냥 뒤지지 왜 살아있니. 다음 달까지도 연락 안 오면 뒤진 줄 알고 좋아했을 텐데.
왜 이래. 널 두고 못 가는 거 알면서.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국밥 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깨끗이 비울 때까지 한 마디도 안 하고 퍼먹었다.
기가 질린 표정으로 내가 처먹는 꼴을 보던 녀석은 사장님을 불러 공깃밥을 추가시켰다.
근데 갑자기 돈은 왜.
조깅하려고.
조깅을 한다고.
응 뜀박질.
왜 운동이라도 하게? 하긴. 뭐라도 해야지. 이유가 뭐야.
지겨움에 지겨워졌다고나 할까. 뭐 그런 게 있어. 운동화를 좀 사고, 먹을 거도 좀 사려고.
연락 줘 진짜 오늘 중에. 떡배한테 전화해 둘 거야.
알았어. 형한테 내가 존나 열심히 할 거라고 해줘. 대신 제일 편한 시간대로.
가지가지하는구나 미친놈. 알았어.
나는 밥을 먹고 녀석과 담배를 피우고, 알바생 가운데 예쁜 여자애가 있는지 좀 물어보다 운동화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게 6개월 전 이야기다. 이제 완연한 겨울이다. 나는 떡배형의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친 한밤 중에 매일 한 시간씩 달린다. 체중이 줄었다. 턱선이 살아났다. 규칙적인 생활이 되었다. 알바 생 가운데 한 명과 사귀기 시작했고, 오늘 그녀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내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달리다 발을 멈춘다. 마지막 코너를 돌기 전에 나오는 다리 앞 길 한가운데에서 작은 고양이를 만난다. 도망가야 하는데, 오히려 나를 보고 제 딴에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그래 봤자 얇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 소리가 날뿐이다. 내가 발을 멈추자 아직 설익은 걸음걸이로 톡톡 거리듯 리듬을 타고 내 발 앞으로 다가온다. 꼬리를 바짝 세워 부르르 떨면서 내 운동화 앞 코를 작은 발로 툭툭 친다. 왜 이제 왔어라며 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여자친구가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고양이를 안아 올려 품에 안고 집을 향해 걸어간다. 추운 겨울밤이었다. 내 몸은 달리기로 덮혀져 있었고 내 품에 안긴 고양이의 차가운 털들도 곧 내 품에서 따듯해졌다. 그르릉 대면서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던 작고 반짝이던 눈이 스르르 기분 좋게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