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보니것, 타이탄의 세이렌
소설은 인생의 무의미함을 말하고있다.
인생은 무의미하고 우연의 연속이고
그래서 불공정하고, 그게 세상이고 우주라고.
코엔형제의 영화들도 계속 말해왔던 주제고, 심지어 노자도 천지불인으로 선언한
유구한, 그리고 어쩌면 유일한 진리(또는 인생과 우주에 관한 유일무이하게 가능한 대답)다.
언제나 문제는 '그럼에도' 이다. 그럼에도? 그렇다면?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
거기에 대해 코엔형제는 '파고'를 통해 답한다. 나는 코엔형제의 영화를 무척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파고는 각별하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캐나다의 겨울, 한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 그것을 수사하는 임산부인 여경찰. 그녀는 이해가 안되는 죽음과 살인(그러니까, 무의미한 우연과 같아서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앞에서도, 결국 집에오면 남편과 따듯한 집안에서 위안을 찾는다. 이 영화의 핵심적인 장면은 그 유명한 '살인마가 시체를 목재 분쇄기에 갈아버리는 장면'이 아니라, 그녀가 잠옷을 입고 부른 배를 조심하며 따듯한 집 침대에 남편 옆에 누워 그날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나누고, 남편의 따듯한 관심 속에 잠이 드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세상은 불가해한 악의가 가득하지만, 우리는 곁에 둘 짝을 찾고 그 사람의 손을 잡는 따듯하지만 작은 행복을 기꺼이 누리는 것이야말로 최선이다라는 것.
커트 보니것 역시 이 우주 전체가 불가해한 악의로 가득차 있고, 어쩌면 인간의 역사 조차 어떤 존재에 의해 의도된 것이라 해도, 그냥 옆에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살아가라는 것. 엉크는 결국 그리했고, 친구와 만나게 되었고, 사랑을 찾았고, 구원을 받는다.
중간에 엉크가 편지를 읽는 장면은 진짜 눈물이 확 맺힐 정도로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