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위에뜬기분이었어

버펄로 '96_08. 레일라

palesun 2024. 12. 18. 08:07

  게빈은 레일라의 가슴이 아닌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데이트를 신청한 유일한 남자였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그녀가 일하던 레스토랑이었다. 게빈은 그곳의 주방 보조였는데, 언젠가 자신의 식당을 열기 위해 그곳에서 경험을 쌓는 중이었다. 그는 화창한 캘리포니아 뉴포트비치 출신으로 6남매 대가족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부모님은 물론 형제자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그가 이야기할 때면 화창한 날씨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 특유의 따듯함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와 그녀의 마음조차 훈훈해졌다. 그는 영업시간이 끝나면 레스토랑 문을 닫고 장차 자신의 가게에서 선보일 메뉴를 주방에서 연습 삼아 요리하곤 했다. 가끔 게빈은 레스토랑을 마치고 퇴근하려는 그녀에게 자신이 한 요리의 평가를 부탁하곤 했다. 덕분에 그녀는 그때  체중이 조금 늘었었다. 

  그렇게 둘은 종종 영업이 끝난 레스토랑의 문을 닫아걸고 늦은 밤 데이트를 하곤 했다. 그녀는 그와 그녀가 앉아있는 테이블에만 조명이 켜진 고요하고 아늑했던 그곳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녀 앞에 놓인 그녀만을 위해 준비한 따듯한 음식도. 손님이 와인을 남기고 간 운 좋은 날이면 와인을 곁들이기도 했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유일하게 조명을 켜둔 테이블에 마주 앉아 그의 음악같은 따듯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산다는 건 뭐 별게 아니군, 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게빈은 자신의 식당 계약금을 치르기 위해 자신이 살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레일라의 집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식당을 열고 그의 눈이 매일 꿈꾸듯 반짝이던 시절이 생각난다. 하지만 식당에 생각보다 손님이 없자 그는 우울해했다. 그녀는 그가 스트레스에 취약한 인간이란 걸 그때 알게 되었다. 식당이 입소문을 타면 점점 잘 될 거라는 레일라의 위로에도 그는 눈에 띄게 침울해했다. 마치 따듯한 지방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 약간의 추위도 참기 어려워하듯이. 몇 달간의 조바심과 노력과 절망의 시기를 거치다 결국 게빈은 약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 결과 그는 지금 차가운 교도소 벽 안에 앉아 모든 걸 흘려보내고 있었다. 레일라는 지금 그가 느끼는 기분이 그녀가 아이를 유산했을 때 느꼈던 기분과 어쩌면 꽤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일라는 아이들에게는 무조건 관심을 쏟고 사랑을 나눠주는 존재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걸 성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보통은 부모나 가족이 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지 못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녀가 그러하듯이. 그녀는 게빈의 아이를 가진 걸 알게 되었을 때, 게빈이 아이에게 충분히 그런 존재가 되어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약에 취해 술 도둑으로 잡혀 2년 형을 받았을 때, 그녀는 조건 없는 부모의 사랑이란 게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모르는 자신이 과연 아이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을지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