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lesun 2024. 9. 25. 15:27

고객님께서 구입하신 물품이 오늘 배송될 예정입니다.라고 굳이
핸드폰 화면에 비치는 달 같은 거실등 이제 여름이
예전보다 훨씬 더 더운 거 같아라고 말하던 8월의 어느 날인가에
창 밖에는 까치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악을 쓴다

당신은 여백을 남기는 편이 아니지라는 말을 듣고 괜스레
창피한 기분에 나는 팔을 들어 드러나려 하는 속살 같은 시간을 여며보는데
꺼져버린 티브이에 아무렇게나 구겨진 몸뚱이. 눈이 마주치는 것은
언제나 불쾌하지, 안 그래?

젖은 산책을 나섰다. 아직 열지 않은 낙원떡집 간판의 글자 하나가
비뚤어져 있었고 골목에는 주인 없는 개가 한 마리 누워있었다. 쫓는 사람 없이
축축한 흔적을 남기며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마주칠까 두려운 기억들

구름은 빗자루로 쓸어 넘긴 듯 줄이 져 있다. 차라리 말이지,
차라리 말이야. 내가 완전히 모르는 게 나았으려남? 오르막 계단을
오르면 숨이 찼다. 그래 하늘은 숨을 쉬기 어렵대구 누군가 그랬었지. 언젠가
다시 찾고 싶은 곳이 있을까?

벤치에 앉아 피우는 담배연기가 꼭 그날만 같아서 문득 
비가 오지는 않을까 파란 하늘을 허망하게 올려다본다. 지나가는 유모차는
옹알거리는 소리를 남기고 어느 날인가 비가 억수로 왔더랬지. 시커먼 비가 쏟아붓던 밤
기다리며 서있던 건물의 틈을 가르던 노란 가로등 빛

하얀 숨을 후후 불던 시커먼 새벽. 어딘가의 뒷골목엔 편의점이
있어서 나는 가끔 담배를 사러 가곤 했었다. 거기에서 영원히 계속
될 것만 같았던 기다림이 기다림으로 끝날 운명이었던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었다.

거세된 숫소처럼 손이 덜 가는 짐승으로 늙은 채 누군가
송두리째 긁어 비운 위장을, 있잖아 소는 위가 4개나 있대,
무얼 그리 오래 곱씹으려고, 헛되이 되새김질하며 마지막 모금을
빨린 담배는 꽁초가 되어 구겨지고

그렇게 해는 떠올랐다. 보내야 할 것들이 좀 남았어,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거라고 믿어. 숲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짚으로 만든 깔개가 더러웠다. 이렇게
미동도 하지 않는 오실로스코프 같은 생각에 나는 어찌할지 몰라 서성였다.

마침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거기 내리막길에서 갑자기 올라타는
내 세월의 무거움을 어깨에 느끼는 오전의 태양 아래에서 나는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다본다.

속절없이 노래만 지는 이파리들
하염없이 높아만 가는 하늘
눈치 없이 맑아만 지는 공기

지금, 여기엔 가을이 한창인데
모로 눕는 이파리 가득한데